북유럽 어느 나라엔가 ‘흰 토끼와 검은 토끼’ 라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한 숲 속에 흰 토끼와 검은 토끼가 살았다.
검은 토끼는 흰 토끼를 수년동안 마음속으로만 사모했다.
흰 토끼 역시 검은 토끼를 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은 토끼는 흰 토끼와 단 둘이서만 있게 되었다.
꿈에도 잊지 못하는 흰 토끼와 함께 하는 시간이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데 웬걸, 검은 토끼는 하루종일 아주 우울한 얼굴이었다.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당연히 흰 토끼는 크게 실망했고 데이트는 엉망이 되었다.
의아한 친구들이 검은 토끼에게 물었다.
"너 도대체 왜 그랬니?"
"너무 좋아서 그랬어. 너무나 좋아서 그 행복이 사라질까 두려워서..."
그 토끼 참 어리석다 하겠지만 우리 주위에도
이 검은 토끼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지금 가진 것이나 처한 입장을 고마워하거나 즐기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이 불평·불만의 원인이 되는 사람 말이다.
입만 열면 ‘몇 년만 젊었어도’
혹은 ‘ 이제 이 나이에 무슨’ 이라고
나이타령을 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내게는 인정스럽고 야무지며 남에 대한 배려가 깊은 지인이 있다.
이 친구는 다 좋은데 한가지, 나이 핑계를 대는 버릇이 있다.
이 친구의 십수년간 변치 않는 레퍼토리는 바로 “ 5년만 젊었어도 ” 이다.
그 친구는 내가 외국인 친구들과 북한산을 등반할 때 처음 만났다.
그날 우리와 어울린 이 친구는 즐거우면서도 몹시 아쉬워했다.
어릴 때부터 영어 잘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오늘 같은 날
영어를 잘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그럼 지금부터 하면 되잖아요?"
내 질문에 30살을 갓 넘긴 이 친구의 대답이 이랬다.
"한 5년쯤 젊었으면 모를까, 이 나이에 무슨"
그 친구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어 잘 하는 것이 소원이고
여전히 "5년만 젊었어도"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참으로 이상하다.
지금 그렇게 바라는 나이인 5년 전에는 왜 시작을 못했을까?
아니 앞으로 5년 후면 부러워할 나이인 지금은 왜 하지 못하냔 말이다.
반면 내일만 부러워하며 지내는 사람들도 많다.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어 간섭에서 벗어났으면 좋겠고
중·고생은 시험지옥에서 벗어나 대학생이 되었으면,
대학생은 얼른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으면 할 것이다.
항상 한 발짝 앞을 갈망한다.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을 만족하지 못하게 여기는 것, 이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오늘을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확실한 오늘을 무시한 채,
지나간 어제나 불확실한 내일을 그리워하는 것이
우리 나약한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나이란 어떤 나이인가!
어제 우리가 그렇게 오기를 고대하던 날이며,
내일 우리가 그렇게 되돌아가고 싶은 그 날이 아닌가!!!
우리가 쉽게 나이타령을 하는 것은 엄살이자 핑계이자 자기기만이 아닌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기회가 없는 것이,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정말 순전히 나이 때문일까 하고 말이다.
중국에 ‘금 밥그릇을 손에 들고 거지 동냥을 한다’ 는 속담이 있다.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모른 채,
아니 살펴보지도 않은 채, 그저 내게 없는 것만 찾아 헤맨다는 말일 터이다.
뜨끔하다.
나는 ‘오늘’ 이라는 금 밥그릇을 손에 들고 무슨 동냥을 하고 다니는가?
흰 토끼와의 데이트를 망친 그 어리석은 검은 토끼와는 또 무엇이 다른가?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사람 탈을 쓴 ‘검은 토끼’ 를 보았다.
방금 군에서 제대한 선배와 그 후배들이었다.
나이에 관한한 누구나 부러워하는 그 새파란 20대 중반의 선배가 하는 말,
"야, 너희들 이제 2학년 되지? 정말 좋은 나이다. 열심히 해라.
내 나이되어서 후회하지 말고"
이 친구 덕분에 나는 올해의 결심 한가지를 새롭게 다졌다.
"난 절대 검은 토끼로 살지 않으리라!"
-옮긴글-